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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무역전쟁
미중 무역전쟁과 30년에 한번 오는 대박의 기회



이 글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시나리오이니 꼭 이렇게 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렇게 될 수도 있으니 이것에 대해 알고 모르고는 투자에 있어서 하늘과 땅의 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꼭 이 글을 읽고 앞으로의 투자 방향에 현명한 참고를 하기 바란다.


미중 무역전쟁이 일어난 것은 투키디데스의 함정 때문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2위의 국가가 1위의 패권국가와 치르는 전쟁이다.
그것이 예전에는 군사전쟁에 한정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군사전쟁은 제일 마지막으로 밀렸다.
왜냐하면 핵무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재래식 전쟁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핵전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그러니 전쟁은 가장 나중에 일어날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어떻게 미중무역전쟁은 진행 될 것인가?

무역전쟁 - 금융전쟁 - 실제전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순서는 무역전쟁으로 해결이 안 되면 금융전쟁으로 금융전쟁으로 해결이 안 되면 실제전쟁으로 비화될 것이다.
그러니 이 순서가 다 진행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낫다.
그러나 이 순서대로 다 진행이 된다는 얘기는 미국이 앞의 두 번의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진다면 마지막 세번째 전쟁에 돌입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니 전적으로 중국이 언제 지느냐에 따라 빨리 끝날 수도 있고 늦게 끝날 수도 있다.
그것은 미국이 언제 이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중국에게 무역전쟁을 선포 했는가?
미국은 항상 미국 다음의 경제력 국가가 미국의 GDP 40%선까지 쫒아오면 전쟁을 선포했고 현재까지는 이겨왔다.
최근은 1980년대 전쟁이 있었고 그 대상은 소련과 일본이다.
소련과 일본은 각각 다른 전쟁의 대상이었다.
일본은 제조업으로 미국을 쫓아왔다.
그래서 경제전쟁이었고 무역전쟁을 통한 금융전쟁으로 마무리 지었고 일본은 닛케이지수가 버블 붕괴되기전 21000포인트에서 최근에 22000포인트에 진입하면서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를 거쳐 잃어버린 30년을 겪었다.
소련은 미국과의 전쟁은 군사적으로의 위협과 이념적 위협의 위기를 때문에 일어났다.
그리고 경제력도 미국을 위협할 수준까지 쫓아왓기 때문에 미국은 무역전쟁을 통해 소련을 해체 시켰다.
그래서 이 전쟁을 통해 미국은 미국을 위협한 두 나라를 상대로 어떤 전술을 썼는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무역전쟁, 경제전쟁을 하면서 미국도 상처를 입는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대통령 트럼프가 부동산 재벌이니 미국의 주가가 망가지지 않는 선에서 공격할 것이라 하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은 죽기살기로 전쟁에 임했고 그 결과 미국의 증시가 50%나 빠지는 1987년 9월 블랙먼데이를 겪었다.
미국은 무역전쟁 와중에 자신도 크게 내상을 입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소련과의 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소련을 죽이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했는지를 알아보자.
소련은 미국과 이념적으로 달랐다.
소련은 공산주의 미국은 자본주의를 대표했다.
소련의 공산주의는 미국에 위협이 되었다.
그래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줄곧 미국은 자본주의 진영이 공산주의로 가는 것을 막는데 국력을 쏟는다.
그래서 득을 본 나라가 대한민국과 대만이고 홍콩과 싱가폴이다.
그리고 가장 큰 수혜를 입은 나라가 일본과 독일이다.
앞의 네 나라는 후진국에서 선진국이 되었으며 일본과 독일은 전범국가에서 미국의 우방으로 그리고 막강한 경제력을 쌓아 부를 이루는 국가가 되었다.
그래서 1991년까지의 세계를 이데올로기(이념)의 시대라고 한다.

1970년대까지 중동전쟁이 벌어졌다.
4차 중동전쟁이 벌어졌고 이로 인해 전세계는 스테그플레이션이라는 경제공황을 겪게 된다.
스테그 플레이션은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오는 것으로 원인은 석유가격이 올라서 물가가 올랐고 급격히 오른 석유가격 때문에 석유를 통한 경제발전을 하고 있던 전세계는 급격한 석유가격인상으로 경기가 후퇴하는 공황을 맞게 된다.
그것이 오일쇼크다.

오일쇼크
제4차 중동전쟁이 아랍권의 패배로 끝난 이후, OPEC의 아랍권 국가인 리비아, 이라크, 이란과 이집트, 시리아, 튀니지가 손 잡고 석유 수출을 줄이는 동시에 원유 가격을 인상했다. 그리고 친미 국가였던 베네수엘라와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와 비 OPEC 국가인 소련도 이틈을 타 석유가격을 대대적으로 인상하며 1배럴당 2.9달러였던 원유가는 3개월 만에 11달러에 이르렀으며, 이는 현재 달러 가치로 환산하면 14.5달러에서 55달러로 폭등한 것이었다.
이로인해 세계는 스테그 플레이션을 겪게 된다.

그렇다면 왜 오일쇼크가 일어났을까?
중동국가인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이 들어오면서 중동전쟁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4차례에 걸친 중동전쟁은 아랍의 패배로 끝났다.
아랍은 이 모든 책임이 이스라엘과 그 뒤를 봐주는 미국 때문이라고 결론 짓고 미국과 이스라엘을 도와준 나라에는 석유수출을 안 한다고 석유의 무기화를 선언한 것이다.

석유가 20세기에 있어서 어떤 존재인가?
석유는 20세기의 에너지이다.
이정도로 설명이 안 되고 산업혁명 이후 인류발전에 가장 중요한 원천인 것이다.
왜냐하면 산업혁명 전까지의 에너지는 식량에너지였는데 그 에너지가 석유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전은 농업의 시대였다.
농업의 시대는 주로 일하는 것이 인간이고 마소와 같은 동물이다.
그러니 인간과 마소(말과 소 등의 가축)가 먹는 것이 식량이다.
그러니 식량의 싸움이 그전까지 인간의 분쟁중 가장 큰 분쟁이었다.
그래서 농업의 시대의 전쟁은 더 많은 땅을 빼앗기 위한 전쟁이었다.
그래야 더 많은 땅을 경작하니 말이다.
그리고 더 많은 땅을 경작할 노예들은 전쟁에서 패배한 패전국의 국민을 노예로 삼았다.
그러니 농업의 시대의 전쟁은 식량이라는 에너지를 좀 더 빼앗기 위한 전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농업의 세기가 지나고 산업혁명을 겪으며 산업의 세기로 들어오면 인간은 더 이상 식량으로 전쟁을 하지 않는다.
식량보다는 오히려 석유를 가지고 전쟁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왜냐하면 이제는 생산을 하는 주체는 사람과 마소에서 기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기계는 모두 석유를 먹고 일을 한다.
이동을 하더라도 비행기, 자동차, 선박, 기차 등을 이용하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석유에너지로 간다는 점이다.
그리고 전깃불을 켜거나 냉장고를 돌리거나 가스레인지를 켤 때도 모두 석유에너지를 이용한다.
그래서 석유에너지의 패권을 잡는 자가 20세기 100년간을 지배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는 석유에너지가 된 것이다.

그런 석유는 중동에서 많이 난다.
그러기에 미국의 정책노선도 바뀐다.
미소 냉전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곳은 독일, 일본이고 그 다음이 한국과 터키였는데 중동지방의 정치적 중요도가 커지는 계가가 되는 것이 오일쇼크로 인해서다.
오일쇼크로 미국은 중동의 전략적 가치에 대해 깨달았다.
그리고 미국은 석유금수조치를 한다.
왜 금수조치를 했을까?
미국이 계속해서 석유를 수출하다보면 석유고갈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요즘에 석유탐사기술의발달로 계속해서 석유의 매장량은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깊은 바다에서도 석유를 캘 수 있는 기술도 발전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석유를 이렇게 캐내다보면 석유가 고갈 될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약 미국이 전쟁에 휘말렸다면 그런데 미국에 석유가 고갈 되었다면 미국은 석유를 수입해서 전쟁을 치뤄야 한다.
그런데 만약 미국의 석유보급로를 해상에서 차단 당했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런 전략적 이유 때문에 금수조치를 하게 된다.
그래서 중동지역은 최근까지 미국의 핵심지역으로 떠오른다.

이러한 조치는 미국의 석유수입으로 이어져 최근에 셰일가스를 수출하기 전까지 매년 700만 배럴 이상의 석유를 매년 수입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오일쇼크는 석유의 더 큰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여기서 누가 돈을 벌었을까?
OPEC의 중동국가들이 돈을 벌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중동국가들은 석유로 돈을 벌지 못했다.
왜냐하면 석유를 감산했기 때문에 시장점유율이 떨어졌고 그로인해 실질적인 석유가격은 올랐지만 사실 번 것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이 당시 석유로 돈을 번 나라는 누구일까?
바로 소련이다.
소련은 중동이 석유감산을 하면서 석유가격을 올리자 석유를 팔아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다.
1970년대에는 북한이 한국보다 더 잘 살았다는 얘기를 한다.
그것은 소련의 막대한 석유이익을 바탕으로 북한을 비롯한 소련의 위성국가들을 원조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으로 대외적인 경제력을 세계에 자랑하기에 이른다.

미국은 이에 위협을 느껴 소련제거 시나리오를 짠다.
이때는 1980년대 초반이며 미국은 레이건 (미국 제40대 대통령 (1981년 1월 20일 ~ 1989년 1월 20일)) 행정부 시절이었다.





오일쇼크로 인한 극심한 물가상승으로 미국의 연준의장인 폴볼커(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재임 기간 : 1979년 8월 6일 - 1987년 8월 11일 )는 인플레파이터라는 별명 답게 미국의 기준금리를 20%까지 올려 버렸다.


그리고 레이건 행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쓰게 된다.

신자유주의정책의 특징은 작은정부를 지향하고 시장친화적인 정책이다.


美상원, 트럼프 감세안 가결… 법인세 35%에서 20%로 기업 불러들인다
미국 연방 상원 의회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핵심 공약으로 추진해온 대대적 감세 법안을 2일(현지 시각) 전격 통과시켰다. 현행 35%인 법인세를 20%로 조정, 거의 '반토막'으로 깎아주는 내용이 담겼다. 개인소득세 최고세율도 39.6%에서 38.5%로 인하한다.

미 언론들은 이를 1986년 공화당 레이건 정부의 감세 이래 31년 만의 최대 규모 세제 개편으로 평가하고 있다. 당시 미 의회는 48%였던 법인세율을 36%로 낮추고, 소득세율도 최고세율을 70%을 50%로 낮췄다. 이번 트럼프표 감세는 이보다도 감세 규모가 훨씬 크고 전방위적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02/2017120201106.html


레이건 행정부 시절 48%이던 법인세를 36%로 낮추고 소득세율도 최고세율을 50%로 낮췄다.

이것은 최근의 트럼프의 행보와 일치한다.

법인세를 20%로 파격적으로 깎고 소득세율도 38.5%로 낮췄기 때문이다.



이것은 법인세, 소득세를 깎아 경기를 살리자는 것인데 어찌보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물가를 잡고 세금을 깎아 경기를 살리는 정책을 같이 병행한 것이다.



이것은 효과가 있었다.

아래 기사를 보자.



‘래퍼 곡선’ 실험한 레이건처럼 … 트럼프, 감세로 경제 살릴까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를 가동했다. 당시 미국은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물가 상승을 동반한 경기침체인 스태그플레이션 양상이 나타나던 시기다. 레이거노믹스 덕분에 미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의 두 배가 넘는 1.8%로 치솟았다. 실업률은 80년 7.0%에서 88년 5.4%로 떨어졌고, 인플레이션은 10.4%에서 4.2%로 내려왔다

당시 미국은 소련과의 국방비 경쟁을 벌이며 재정 지출이 대폭 늘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채 비중은 레이건이 취임한 81년 1월 14.5%에서 퇴임한 89년 1월 31.5%로 두 배 이상 커졌다.

http://news.joins.com/article/21523486


그렇다면 이 당시 이렇게 기준금리를 올리고 미국이 세금을 깎아 경기부양을 한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1980년 멕시코와 1982년 브라질의 모라토리엄을 시작으로 중남미 국가들 거의 전체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정도로 위기를 겪었다.
이들이 왜 모라토리엄을 겪게 되었을까?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이 달러 유동성의 씨를 말려 버렸기 때문이다.



즉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국채 이자가 엄청난 수익을 거둘 수 있도록 만들었고 게다가 세금정책과 재정정책을 같이 써서 미국은 성장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러니 미국으로 돈이 몰릴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러니 위험한 신흥국에 굳이 투자할 필요가 없었고 달러는 모두 미국으로 향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달러가 없으면 석유와 식량을 살 수 없다.

그러니 달러의 유동성이 마른 남미국가들은 모두 모라토리엄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달러 유동성을 해결하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미국에 수출을 해서 달러를 받아 오는 것과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IMF 구제금융을 받는 것이 있다.

그러나 후자는 국내에 금융시장 개방과 공기업을 민간으로 넘기는 등의 초강력 조치를 통해 외국의 투기자본이 활개를 치게 되어 국부가 유출되는 부작용이 있다.



그렇다면 어떤 나라들은 이런 달러 유동성에서 해방되었을까?

그 나라들은 한국과 대만 등 미국의 우방국가들이다.



달러라는 기축통화의 유동성을 말리는 정책으로 미국이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미국의 반대편을 제거하려는 적략이다.

만약 이런식의 전략을 쓰면 미국은 자신의 입맛대로 상대를 고를 수 있다.

즉 미국이 수입을 해주면 달러 유동성이 생기니 그 나라는 사는 것이고 만약 미국이 수입을 안 해주면 달러 유동성이 없어서 구제금융을 하면서 나라 곳간이 털리는 것이다.

물론 미국도 이런 과도한 경제발전은 오버슈팅이 되어서 나중에 미국의 주식 전체가 폭락하기도 한다.



이때 미국은 과도하게 경기부양을 했고 그래서 동북아의 대만, 한국, 일본은 살려주되 소련과 친한 남미와 소련연방의 나라들은 완전히 거지를 만들었다.

그래서 전부 모라토리엄 선언하고 이들이 조금 좋아지는가 싶더니 다시 80년대 후반 경제위기가 또 다시 찾아온다.



그래서 이들은 90년대 들어오면서 Crawling Peg제(고정환율제외에 자국통화를 달러화 등 기축통화에 연계시키고 주기적으로 환율을 조정하는 제도)를 폐기하고 대대적으로 금융개방하게 된다.



브라질  

- 1990년 금융기관의 외화증권 발행을 허용하였으며 1991년 외국인의 국내주식 투자를 자유화하고 외국인 투자자에 대해서는 자본이득세를 면제
- 자본자유화 이후 외화유입이 급증하자 1993년 중반부터 1994년말 멕시코 위기 이전까지 외채의 최저만기 연장 등 규제를 강화
멕시코
- 1986년 외채가 적은 중소기업에 대해 외자도입 승인을 면제하였고 1989년에는 주식시장을 개방
- 1989~92년중 국채에 대한 비거주자의 투자를 단계적으로 허용하였고 1993년에는 외자기업에 내국민대우를 부여하여 규제를 더욱 완화
아르헨티나
- 1989년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자본이득세를 면제하고 외국인 투자에 대한 사전승인제도를 폐지하는 등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



이 나라들 외에도 칠레, 콜롬비아등이 금융 및 주식시장을 외국인에게 개방하게 된다.

이러한 사례를 기억해 놓아야 한다.

왜냐하면 중국이 미국에게 수술 당했을 때 이런식의 개방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소련과 친했던 남미국가들은 소련과의 교역이 거의 끊겼다.



이외에도 1960~70년대 서양에서 돈을 끌어온 소말리아, 이집트 등 수 많은 제 3세계 국가들도 높은 이자로 인해 국가가 파산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럽에서 돈 끌어다가 공장을 지었던 동유럽국가들도 엄청난 타격을 받아 완전히 망했다.

물론 이때 한국도 굉장히 어려웠다.

그렇다면 미국은 이러한 기축통화의 유동성을 말리는 방법을 누구를 통해 배웠을까?

미국 이전에 기축통화국이었던 영국을 통해 배웠다.

물론 영국, 미국의 금융전쟁에 배후에는 금융의 피가 흐르는 유대인들이 있었다.



그러니 미국의 중앙은행격인 FED도 생겨난 원인이 바로 금융전쟁의 산물이었다.

그렇다면 FED는 어떻게 생겨 났을까?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은 1906년 4월 18일 새벽 5시 12분 북부 캘리포니아 해안을 강타하여,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큰 지진과 더불어 며칠동안 화재가 지속되었다.최소 3000여명이 희생되었고, 샌프란시스코의 80%가 파괴되었으며, 22만5천 명에서 3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집을 잃었다. 피해액은 4억달러로 추산되며 보험업계의 추산으로는 2억3천5백만 달러(2005년의 가치로 49억 달러에 해당)한다고 한다.

지진으로 인한 부동산 손실은 4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어 왔다. 보험사들의 사상자들 자료는 2억 3500만 달러로, 2014년 달러로 환산하면, 61억 7000 달러에 상응한다.

출처: 위키백과

이러한 지진이 일어나자 샌프란시스코는 뉴욕의 월가에 긴급 자금을 대출 해줄것을 요청한다.
그런데 뉴욕도 워낙 큰 돈이니 돈을 주면 안 된다고 하니 샌프란시스코는 영국에서 보험료를 받으면 줄 것이라 했다.

이때 당시만 하더라도 금본위제였다.
금본위제는 영국의 파운드화를 발행하려면 일정양의 금을 확보하고 파운드화를 발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화폐는 그냥 종이에다 돈을 찍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무한대로 찍어내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화폐가치가 떨어져 아무도 그 돈을 믿지 않게 된다.
그러니 발행할 양만큼의 금을 확보하고 돈을 찍어내야 한다.
그런데 영국의 입장에서도 이렇게 큰 돈이 일시적으로 빠져 나가면 영국경제가 휘청인다.
휘청인다는 것은 디플레이션에 빠진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갑자기 돈이 빠져나가 시중에 돈이 없으니 거래가 안 되고 거래가 안 되니 경기는 침체하는 디플레이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은 보험금을 미국에 주지만 영란은행(영국의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려서 미국의 돈을 다시 빨아 들인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때 중앙은행이 없었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돈을 찍어내기도 하지만 중요한 역할중에 최종대부자의 역할도 한다.
말하자면 은행이 파산했을 때 누가 돈 빌려주는가?
바로 중앙은행이 돈을 빌려준다.
그런데 영국이 금리를 올리니 미국의 돈이 모두 빠져 나가고 미국은 경제공황을 맞는다.
그것이 샌프란시스코 지진이 난 1년 후인 1907년이다.

1907년 공황 1907년 공황(Panic of 1907 또는 ‘1907년 은행 패닉’, 또는 ‘니커보커 위기’로도 알려져 있다)은 1907년 미국에서 발생한 경제 공황이다. 뉴욕증권거래소 주가는 전년도 최고치에 비해 50 %까지 폭락해 다수의 은행과 신탁 회사에 뱅크런이 발생했다. 뉴욕에서 시작된 위기는 곧 미국 전역에 퍼져 많은 주법 은행, 증권 회사 또한 국내 은행이나 기업이 파산하고 실업자 수는 300만 명에서 400만 명에 달했다. 뱅크런이 일어난 가장 큰 이유는 뉴욕의 금융 기관에 유동성이 부족했다.

그렇다 유동성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때 JP모건이 개입해서 겨우 뉴욕의 증권거래소 파산을 막았고 결국 미국의 중앙은행인 FED를 만든다.
그리고 1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막대한 금을 보유하며 달러가 파운드화를 누르고 기축통화국이 된다.
미국은 정확히 알았다.

영국의 파운드화는 면직물과 같은 제조업을 결제수단으로 하는 것이라 대공황과 같은 위기에 약했기 때문에 미국은 달러화를 에너지와 식량의 주요 결재수단으로 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영국의 전략이다.

금이 빠져 나가자 기축통화국인 영국이 바로 금리를 올려 영국으로 금을 빼앗아 오는 전략이다.

그래서 미국이 망한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이러한 방법을 1920년대 미국이 영국에게 썼고 미국은 영국과의 통화전쟁에서 이김으로써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얻었다.



기축통화국이란 이렇게 금리의 조절만으로도 세계의 통화량을 조절할 수 있다.

그래서 살생부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손 볼 나라들을 손 본다.



미국은 이런식으로 미국에게 협조하지 않는 나라들을 손 봄으로써 공산세계의 수요공급체계를 우선 망가뜨린다.

그리고 다음이 미국의 GDP40% 까지 따라온 일본을 손 볼 차례다.



미국은 어떤 나라를 손 볼 때 그 나라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한다.

그리고 그 약점을 건드린다.

물론 그 나라도 그 약점을 알고 있다.

그래서 쉽게 당하지 않는다.

그러니 미국이 당황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미국의 증권시장 폭락이다.



미국의 폴볼커 FED의장의 고금리 정책은 어느정도 효과를 발휘하여 물가를 잡았다.

그러나 미국의 중소기업을 비롯한 기업들의 고금리로 인해 설비투자를 미뤘고 그로인해 대부분을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큰 나라들이 독일과 일본이다.



독일과 일본은 대표적으로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이론을 따른 나라다.

유치산업 보호 정책을 밀어부친 나라라는 뜻이다.

그래서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려 수입 관세를 올리고 각종 보조금과 각종 세액공제 등을 해서 수출기업을 보호한다.

그래서 경쟁력을 키워 세계시장에서 선두에 서겠다는 전략이다.

이 전략은 중국의 현재 전략과 닮아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이 전략을 썼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60년대 서울대 경제학과 책은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이나 리카르도 처럼 자유무역을 강조하는 책보다는 리스트의 책들이 훨씬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고금리로 망가진 제조업을 뚫고 미국으로 경쟁력을 갖추며 들어온 것이 독일과 일본의 제조업이다.

그래서 미국은 플라자 합의를 해서 독일과 일본의 환율을 강제적으로 올린다.



플라자 합의가 채택되자 독일 마르크화는 1주만에 약 7%, 엔화는 8.3%가 각각 상승했고, 이후 2년동안 달러는 30% 이상 급락하게 된다.

향후 엔화는 달러화에 두 배까지 치솟게 된다.

그렇다면 일본은 그로인해 수출이 줄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일본은 생산성향상과 원가절감 그리고 급여동결, 파업금지의 형태로 노사합의를 이루고 혁신을 이루어 일본의 엔고를 뚫고 승승장구한다.



그러면 그전까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제조업 수출로 인해 엄청난 무역흑자를 이뤄 냈다.

그러면 일본에 엄청난 달러가 들어오는데 당연히 달러가 넘칠테고 달러가 넘치면 엔화가 절상이 되어야 정상이다.

그러면 일본은 수출이 힘들어진다.

왜냐하면 일본의 돈가치가 뛰어서 관세를 매긴것과 같은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본은 이렇게 달러가 물밀듯이 들어오면 달러를 밖으로 빼 내야 한다.
그러면 일본 기업들이 받은 달러를 미국 국채를 사도록 유도한다.

혹은 투자를 통해 해외 기업 인수합병을 하거나 미국의 부동산을 사는 것이다.

그러면 달러가 일본 내부로 안 들어오고 해외로 돌아서 결국 엔화 가치가 낮은 상태로 유지하도록 만든다.

이러니 이때 부동산이 일본 때문에 치솟은 것이다.

이러니 미국이 환율조작국 소리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엔화가 뛰었다.

그러니 일본은 활발한 M&A를 통해서 소니가 헐리우드 영화사를 사고 미국의 부동산을 사고 했던 것이 더 가속화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일본은 생산성 향상을 이뤄 냈을까?

미국은 이때 엔고 뿐 아니라 일본 자동차에 대해서도 수출 쿼터를 걸어서 일정량 이상은 수출을 못하게 했다.

그러자 싼 가격에 자동차를 많이 파는 전략보다 비싼 차를 소량 파는 것으로 바뀐다.
대표적인 것이 도요타 자동차의 고급 브랜드 렉서스 같은 것이다.

그래서 고급차량을 렉서스가 싹쓰리하고 저가형 차는 한국의 현대차가 미국으로 수출이 되어 미국의 자동차업계는 더 어려워진다.

이런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은 미국의 일본견제를 통해서 컸다.



[이재구코너]미·일 반도체전쟁 시작

http://www.zdnet.co.kr/column/column_view.asp?artice_id=20100610185218



미국은 일본의 반도체 기술에 대해 불량률이 높다는 이유로 경쟁이 안 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일본은 기술향상으로 에러율을 확연히 줄이고 저가로 더 좋은 제품을 제공하자 미국내에서 점유율이 크게 올랐다.

그러자 미국은 1985년9월30일 인텔,AMD,내셔널세미컨덕터 등이 일본산 메모리인 EP롬에 대한 반덤핑 제소장을 제출했다.

내용은

“히타치,미쯔미시,후지쯔 등이 EP롬을 원가 이하로 팔고 있으니 조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었다.
청원서엔 ▲일본 시장 진입 장벽 ▲외산 반도체 차별 ▲일본정부의 반개방적 보조금 지원 ▲일본정부의 반도체 투자 및 생산설비 지원 확대 등 4가지가 담겼다. 그리고 세계적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는 미국 반도체(미국내 83%,유럽 55%,아시아47%)가 유독 일본에 11%를 보인 것은 제품차별과 진입장벽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로써 미국은 3차에 걸쳐 일본의 반도체 업체를 압박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일본의 반도체 업체들은 쿼터를 줄여야 했고 이 반도체 직권조사로 인해 96년도까지 일본, 미국업체들은 R&D 투자에 나설 수 없었고 반도체 가격을 높여야 했다.

그러면서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 기업이 있다.

바로 삼성전자다.

저렴한 가격과 연구개발로 일본을 바로 따라 잡았고 미국이 일본을 신경쓰는동안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 되었다.



그렇다면 주가는 어떠했을까?

1980년도부터 1987년도까지 지속적으로 오르던 미국 주식시장이 검은월요일이라는 주가 대폭락을 맞이한다.

검은 월요일(Black Monday)은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에 뉴욕증권시장에서 일어난 주가 대폭락 사건이다. 이 대규모 폭락 사태는 홍콩에서 시작하여 서쪽을 향해 유럽으로 퍼졌고, 다른 증권 시장이 폭락한 이후 미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날 다우 존스 산업평균지수는 508포인트(22.61%) 하락한 1,738.74포인트로 장을 마쳤다.

지금 나스닥에서 평균적인 등락폭이 0.2%정도임을 감안할 때 22.61%의 폭락은 주식하는 입장에서 보면 완벽한 재앙에 가깝다.

회복은 그러나 나스닥 기준으로 2년 정도후인 1989년 10월에 1987년 블랙먼데이 당시의 최고점의 주가지수인 454포인트를 회복한다.

그러나 나스닥은 그 후 다시 주가가 꾸준히 올라 닷컴버블전인 2000년대 초반까지 하락 없이 계속 오른다.













이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바로 레이거노믹스로 인한 과도한 경기부양의 결과이다.

그리고 물가를 잡기위해 금리를 무리하게 상승시켰고 재정적자는 엄청나게 높아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미국은 과도한 경기부양과 강한 금리인상으로 일본의 엔화를 높이는 플라자합의를 이끌어냈고 그후 미국경기는 추락햇으나 다시 미국은 꾸준히 올라 닷컴버블의 2000년대 초반까지 거의 10년 이상을 상승했던 것이다.

결국 1980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금리인상과 더불어 경기부양은 1987년도에 일시적인 미국의 하락을 이끌어 냈으나 그후 미국은 주가에 있어서 더 승승장구했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땠을까?







1987년 블랙먼데이시절 조금 떨어지기는 했다.

하지만 곧이어 폭등장세가 이어지다 1989년 미국이 블랙먼데이를 극복한 1989년에 극적으로 폭락이 있엇다.

이것은 앞으로의 미중무역전쟁의 상황에서 투자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다.

만약 내가 이때 이 그래프를 가지고 투자를 했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미국이 금리인상과 재정정책, 환율정책으로 미국에 1980년대 초부터 미국에 투자하다가 1985년 프라자 합의로 일본의 자산 거품이 끼기 시작하면 일본으로 전재산을 옮기고 미국이 1989년 블랙먼데이로 붕괴한다면 붕괴 후 회복하는 것을 봐서 다시 일본에서 자산을 빼서 다시 미국으로 갈아타고 2000년대까지 계속된 미국투자를 하면 된다.

이것이 포인트다.

이것을 미중 무역전쟁에 대입해서 투자를 하면 된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잃어버린 30년이 되도록 무너졌을까?



첫번째 바젤1의 도입



사실 현재 바젤3까지 왔는데 왜 바젤이 처음 왔는지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그것은 누가 그냥 정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국제관계에 따라 어느 한 나라를 죽이려고 만든 정책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것을 설계하는 것은 금융강국인 미국이나 영국이 될테고 그것은 앞으로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혹은 몇 십년이 지난 다음에야 그 비사가 국제금융전문가 등의 책을 통해 밝혀진다.

그러니 현재의 IFRS17도 그냥 도입되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어떤 나라를 설계해서 해체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있다.

물론 회계를 이렇게 까 뒤집으면 회계사나 회계법인은 떼돈을 번다.

그래서 반드시 이렇게 회계기준을 해마다 바꿔줘야 하는 경우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바젤1은 어떻게 도입 되었을까?

1985년 프라자 합의로 일본은 엔화를 급격히 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엔화만 올려서는 솔직히 일본의 추락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서 FED의장인 폴볼커는 바젤을 도입하며 일본을 겨냥했다.

이때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은 국제은행의 순위가 탑10중 8개의 은행이 있을정도로 일본은행은 약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젤을 통한 BIS 비율 규제를 도입한다.

BIS 비율은 지급준비금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돈을 찾으러 올 때를 대비해 일정비율을 은행에서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비율을 뜻한다.

그것은 요즘은 약 8%정도 된다.

이것은 예전 유대인이 전당포에서 금보관증을 주고 금을 빌려줄 당시 금을 맡긴 사람과 소송이 붙었을 때 8%정도는 괜찮다는 판례가 있어서 그것이 근거가 된 것이다.

미국은 갑자기 바젤을 도입하면서 자기자본 비율이 8%비율에 못 미치는 은행은 국제업무에서 퇴출 시킨다는 발표를 한 것이다.

이것은 일본을 겨냥한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일본은 부동산 담보대출 비율이 높아서 자기자본 비율이 턱없이 낮았다.

미국은 이러한 일본이 위험하다 생각했다 하는데 아마도 이것은 핑계고 일본을 플라자합의와 함께 일본을 원투펀치로 확실히 가라앉히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로 인해 일본은 자기자본 비율을 높이려고 두 가지 방법을 쓴다.

하나는 대출액을 줄이는 방법이다.

그 때문에 신규대출을 최대한 억제하고 기존에 대출을 회수하는 방법을 쓴다.

그러니 기업은 대출 회수 때문에 부실화되고 기업은 어디서도 돈을 빌릴 수없어 멀쩡한 기업도 파산 한다.

다음은 자기자본 비율을 높이는 방법인데 은행이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려고 은행은 새로운 주식을 더 발행하는 유상증자를 감행한다.

그러나 유상증자를 하면 주가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가가 떨어진다.

그리고 유상증자의 내용 또한 나쁘지 않은가?

은행이 부실화 되어서 유상증자를 하는데 주가가 올라갈리가 없다.

그러니 오히려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려 유상증자를 했는데 자기자본 비율이 더 떨어지는 결과가 나타난다.

결국 은행 파산, 기업 파산이다.



그래서 일본은 플라자합의로 엔고 바젤 도입으로 BIS 비율을 높인 결과 은행 부실 파산, 기업 대출 회수 파산이 이어지며 90년대 초반 일본은 거대한 버블이 꺼진다.



둘째 파생상품



1989년 무렵이었는데 일본은 수출은 주춤해지고 엔고로 인해 자산버블이 심해졌다.

그러면서 일본의 닛케이지수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었다.

그 때 미국의 모건스탠리와 살로몬 브러더스 같은 투자은행들은 주가지수 풋옵션이라는 투자상품을 만들어 일본으로 왔다.

간단히 말하면 이 옵션은 앞으로 일본의 주가 상승에 베팅하는 옵션이다.

사상최고치를 찍는 이런 일본증시에서 떨어지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본인들은 풋옵션을 엄청나게 샀다.

그리고 미국은 다시 닛케이지수 풋 워런트라는 금융상품을 모건스탠리, 골드만 삭스 등 투자은행들이 덴마크에다가 팔았다.

즉 일본 닛케이지수가 폭락하면 돈을 버는 상품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유럽에서 엄청나게 팔렸다.

미국 투자은행은 양쪽에 상품을 팔아서 엄청난 수수료를 거뒀고 닛케이지수 풋 워런트(NPWs)가 인기를 끈지 한 달만에 닛케이지수는 완전 폭락했다.



4만 포인트까지 갔던 닛케이지수가 92년에는 1만5천포인트까지 폭락했다.

그래서 일본의 대형은행은 완전히 망했다.

그리고 1995년 일본의 불량자산이 50조엔을 넘었다.



일본은 금융공격으로 무너졌다.

무역공격으로 무너지지 않았다.

일본은 이 당시 압도적인 제조업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소비시장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소련은 어떻게 무너졌는가?



일단 1980년대 전반에 걸쳐서 동유럽 국가들과 남미 국가들이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무너지면서 무역을 할 수 있는 상대국이 전부 거지가 된 것이 결정적 이유이다.

그리고 1985년 프라자 합의 이후 미국은 20%까지 올랐던 기준금리를 5%선까지 급격히 금리를 내린다.

그리고 소련의 약점을 찾아 공격한다.

지금 러시아의 수출품이 무엇인가?

석유, 천연가스를 비롯한 원자재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

미국은 사우디와 공조해서 석유의 가격을 내린다.

그러면 사우디는 손해 아닌가?

석유의 가격을 내리면 그 보전은 어떻게 받는가?

미국은 증산으로 인한 손해를 유럽과 미국의 시장점유율로 보장해준다.

그래서 사우디에서 미국은 전략비축유로 매년 엄청난 양의 석유를 사주기로 한다.

사우디도 나쁠 것이 없었다.

그래서 석유의 가격을 낮춰버린다.

석유의 가격이 낮아지니 따라서 물가도 떨어졌다.

그래서 1985년 이후의 기조를 3저 호황이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3저호황의 최대수혜를 입게 된다.

1960년대 ~ 1980년대 초반까지 대한민국의 물가는 기본이 10% 상승이었다. 그리고 수출이 좋으면 30%를 찍기도 했다.

실제로 1975년 10월에 30.5%를 찍었다.
그런데 3저 호황 시절에는 평균 물가상승률이 4.3%였다.

이 얼마나 낮은 물가상승률인가?
게다가 높은 경제성장률과 안정된 물가를 바탕으로 주가가 폭등을 했다.

3년동안 69.9%, 92.6%, 72.8%의 상승을 했다.

연 평균 주가가 77.1% 상승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당시 3저란 무엇인가?

저유가 : 석유값이 1980년에 배럴당 40달러를 찍고 하락을 시작한다.


저금리 : 1980년대 우리나라는 외국에 진 빚이 장난 아니었다. 그런데 국제금리가 하락하였다.



저달러 : 1985년 '1달러 = 260엔'까지 갔던 엔/달러 환율이 1988년에는 '1달러 = 123엔'까지 하락한다. 엔/달러환율이 이렇게 하락하자, 미국의 수입업자는 당황하게 된다. 옛날에는 1달러를 가지고 일본에 가면 260엔짜리 물건을 살 수 있었는데 이제는 123엔짜리 물건밖에 구입을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의 수입업자가 일본에서 방향을 틀어 한국을 찾아왔다. 덕분에 수출을 증가했다.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미중무역전쟁의 결과로 이러한 기회가 어느나라에서는 조만간 일어나게 될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일본이 될 수도 한국, 대만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베트남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베트남은 기술적인 축적을 비롯해 여러가지 조건에서 미흡하다.



아무튼 소련은 이런 3저 호황과는 반대로 국내사정은 더 안 좋아졌다.

왜냐하면 소련은 유가가 높을 때 국민들의 복지수준을 한층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가에서 계획하는 경제의 비효율은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이러다 유가가 급속히 떨어지자 경제는 타격을 받는다.

결국 1922년 12월 30일에 건국된 소련은 끝내 1991년 12월 26일에 해체된다.



소련은 일본보다 수술하기가 더 쉬웠다.

일본처럼 생산성이 좋고 기술력이 좋아 미국이 금융전쟁까지 가지 않고도 무역으로 얼마든지 끝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미중 무역전쟁에서 우리는 어떤식으로 대처를 해야 하는가?

미국은 앞으로 무역전쟁 - 금융전쟁 - 실제전쟁으로 갈 것이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은 무역전쟁의 일환이다.
그러나 중국을 무역전쟁만으로 끝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러니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장기간 가게 된다면 중국에 투자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위험하다.
중국이 무릎을 늦게 꿇을수록 중국이 잃는 것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미국은 앞으로 어떻게 중국을 압박할까?
미국은 레이건 행정부시절과 비슷한 정책을 지금 펼치고 있다.

트럼프 달러화 강세 프로젝트

美상원, 트럼프 감세안 가결… 법인세 35%에서 20%로 기업 불러들인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02/2017120201106.html

트럼프가 주고…"인프라에 1조7천억弗 투입"
http://news.mk.co.kr/newsRead.php?sc=30000001&year=2018&no=58474

美연준, 이르면 6월 금리인상 시사…"물가, 2% 목표 근접“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03/2018050300655.html

미국은 어떤 정책목표가 있으면 찰떡공조를 하는 모양새다.
기업의 법인세를 20%로 낮췄다.
그리고 내년 3월쯤 인프라 투자로 다시한번 경기부양을 준비하고 있다.
법인세도 트럼프가 한번 더 법인세를 낮춘다고 했다.

트럼프, 법인세율 더 내린다

http://news.hankyung.com/article/2018070144601



연준은 금리인상 시기를 연중 4번에서 최대 8번으로 늘릴지 고민하고 잇다.

금리는 기자회견을 하는 4번만 올리고 내리고를 했는데 기자회견을 앞으로 8번 하겠다고 했다.



파월 美연준 의장 "모든 FOMC 후 기자회견 개최…의사소통 개선 목적"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80614_0000335759



이것은 금리를 최대 8번까지도 올릴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트럼프는 미친듯이 경기를 부양하고 연준은 경기과열 때문에 그에 못지않은 금리인상을 한다는 얘기와 같다.

이러면 어느때와 비슷한가?

레이건 행정부와 비슷한 길을 가는 것이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1980년도부터 1985년까지 일본을 프라자 합의로 이끄는데 걸린 시간은 5년 정도가 걸렸다.

중국은 몇 년이 걸릴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5년이 되었건 10년이 되었건 상관없다.

지금 중국은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두두려 맞고 있다.

그러니 중국증시는 개판이고 미국증시는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중국이 프라자합의로 나오기까지 이러한 기조가 이어질 것이다.

이유는 중국은 1980년대 일본, 소련보다 훨씬 안 좋은 상황이다.

일본과 소련 두가지 경우를 가지고 지금의 중국을 바라보자.



중국은 일본의 기술력보다 떨어진다.

세계1위를 하는 품목은 많지만 첨단제품은 거의 없다.

게다가 첨단제품도 미국이 제재를 가하면 한 순간에 망할 수 있다는 것도 미국이 보여줬다.

ZTE사태다.



美, ZTE 제재 일부 일시해제…기존망 유지 위한 거래 허용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7/04/0200000000AKR20180704018500071.HTML



중국 2위 통신장비업체이자 미국 내 스마트폰 판매 4위에 오른 ZTE는 국제사회의 이란과 북한 제재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지난 4월 7년 동안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금지하는 제재를 받았다.



그런 ZTE가 벌금을 내고 경영진을 교체하는 조건을 다 수용하고 미국에 무릎을 꿇었다.

이만큼 중국의 기업은 미국의 부품, 한국, 일본의 부품이 없으면 기업이 순식간에 파산할 수도 있다.

나머지 중국기업들은 그다지 무섭지 않다.

어차피 지식재산권이 거의 없어서 해외로 수출이 안 된다.

만약 제3국에 수출했다가 지식재산권 위반으로 제소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러니 생산성향상과 제품의 질로 엔화가 두 배 올랐어도 지금 세계1위 하는 것은 그만큼 기술력이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일본제품을 이기려고 해도 그 당시 미국은 못 이긴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러나 현재 중국은 미국에 비하면 기술력이 형편없다.

그러니 무역전쟁으로도 얼마든지 중국을 꺾을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장기전으로 시간을 끌면서 계속해서 미국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어떻게 될까?

증시는 등락을 하겠지만 결국 미국이 원한는 것을 얻어낼 때까지 미국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중국의 금융시장 개방이다.

중국은 금융시장이 개방되지 않았는가?

그렇다

중국은 홍콩을 통해 금융거래를 하지 중국 대륙은 개방되지 않았다.

그래서 선강퉁(선전과 홍콩이 통했다.), 후강퉁(상하이와 홍콩이 통했다.) 왜 통했다는 말을 쓸까?

홍콩을 통해서만 중국 대륙의 금융시장에 접근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닫힌 금융시장은 어떻게 개방을 할까?

홍콩을 통해서 개방을 시킨다는 것이 하나의 시나리오다.

홍콩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

부동산 거품이 심하게 올라온 상태다.

왜 홍콩은 부동산 거품이 심하게 되었을까?

이것은 다 중국당국의 무역흑자 때문이다.



美무역적자 9년만에 최대…트럼프, 낙제!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8&no=89610


국가별로는 중국과의 무역적자가 전년 대비 8.1% 증가한 3752억달러(약 405조6000억원)로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지난해 미국이 기록한 전체 무역적자 중 3분의 2가량이 중국에서 발생했다. 상무부는 대중 무역적자 중 3분의 1 정도가 컴퓨터, 가전제품, 휴대폰 등 첨단기술 제품을 수입하는 데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대미무역흑자가 3752억 달러나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트럼프는 무역전쟁을 시작했다.

중국정부는 무역흑자액을 줄이고 중국제조2025를 통한 지적재산권 등을 국가차원에서 보호하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중국당국의 무역흑자 때문에 홍콩에 거품이 끼었을까?
1980년대 일본과 같은 이유이다.
중국과 같이 엄청나게 무역흑자가 나는 나라는 나라 안에 달러가 넘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렇게 넘치면 중국에 달러가 흔해지니 달러의 값은 떨어지고 중국돈인 위안화의 가격은 올라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위안화 가치가 올라가면 어떻게 되는가?

중국이 미국에 수출을 못한다.
왜냐하면 중국의 제품은 싼 맛에 수출하는데 중국제품이 비싸지면 그 장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드시 기업이 거둬들인 달러를 해외로 빼낸다.

하나는 기업별로 미국의 국채를 매입하도록 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해외 부동산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기업은 거의 공기업이다.
그러면 누가 지배하는가?
바로 시진핑을 비롯한 공산당이 지배한다.
그러니 자신들의 측근이나 친인척이 사장일 확률이 높다.
그들은 회사돈을 이용하여 개인적인 재물을 축적하는데도 쓴다.

“시진핑 매형 등 중국 고위층 `4272조원 국외 은닉”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china/620953.html

시진핑도 현금 자산으로만 빼돌린 것이 4272조원이나 된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자금이 해외부동산으로 갔을까?
그렇다면 왜 부동산일까?
왜냐하면 부동산은 실명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세회피지역은 계좌가 털릴 가능성이 있는데 부동산은 그런 걱정이 덜하다.
왜냐하면 조세회피지역의 계좌는 영국, 미국도 자국의 조세회피범을 찾기 위해 계좌를 털기위해 세무당국과 정보기관 등이 공조를 하기 때문에 의외로 쉽게 털린다.
그러나 부동산은 해외의 선진국에 사면 이러한 위험이 덜하다.
그래서 해외부동산이 급등을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자국내에서도 자산 버블이 심하게 커졌다.

그런데 홍콩은 페그제를 쓴다.
페그제는 홍콩달러와 달러가 연동되어 있다는 뜻이다.
홍콩은 환율을 달러당 7.75~7.85홍콩달러 사이 범위로 유지하는 페그제를 택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홍콩의 페그제를 이용해 중국의 금융시장을 개방할 것이다.
어떻게 이용할까?
바로 지금 FED에서 올리는 금리를 이용하면 된다.
1980년대 초에 폴볼커 FED의장은 기준금리를 20%까지 올렸다.
그러자 신흥국들이 디폴트가 일어났다.

외국으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 외환을 빌려 투자를 했던 나라들은 유동성함정에 빠진 것이다.

그렇다면 홍콩은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같이 금리를 올려야 한다.

이자를 안 올리면 어떻게 되는가?

미국으로 자금이 빠져 나갈 것이다.

왜 그럴까?

미국채를 산다면 안정적으로 얻는 기대이익이 높아지는데 홍콩에 돈이 있으면 그런 이자수익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페그제를 택한 국가들만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변동환율제로 되어 있는 나라들은 환율이라는 변수가 하나 더 있다.

그래서 미국이 만약 0.25%씩 1년에 8번을 올려서 2%를 올렸다고 치자.

엄청나게 올린 결과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환율이 그렇게 했을 당시 1100원에서 1000이 되었다면 몇 %움직인 것인가?

10% 떨어졌다.

그러니 미국이 2% 금리를 더 받을 때 환율하락 때문에 10%를 받을 수 있다면 외려 8% 이익 아닌가?

그래서 이런 국가들은 금리를 올린다고 미국으로 돈이 빨려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트럼프가 쓰는 재정정책, 세액공제 등의 정책은 미국의 성장률을 올리는 전략이다.

환율이 올라간다는 것은 그 나라 경기가 좋아진다는 뜻이다.

그러니 성장률이 좋아지면 환율도 따라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요즘 미국의 환율이 좋지 않은가?

이것이 트럼프가 쓰는 법인세 인하, 세액공제 등을 통한 세금 정책 등 계속된 재정 퍼붓기가 미국경기를 끌어올리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페그제가 아닌 나라도 트럼프가 쓰는 이런 경기부양책을 보면서 미국경기가 좋아질 것 같다는 인상을 얻게 되면 미국 달러화가 전부 미국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러니 페그제 국가는 미국으로 달러화를 안 빼앗기기 위해서 같이 기준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참고로 홍콩은 중앙은행이 없다.

그냥 미국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면 미국 연준이 계속해서 금리를 올리고 내년에도 올리고 후년에도 올리면 어떻게 되나?

그러면 세계의 부동산 버블은 터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금리가 올라가면 이자에 대한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부동산 버블이 심하다.

그래서 FED가 지속적으로 금리를 올리는 80년대 초반은 홍콩의 자산버블에게는 완전히 쥐약이다.

홍콩은 평당 5억씩 하는 아파트가 있다.

32평은 무려 150억원에 달한다.

그러니 이런 아파트의 이자가 연 1%만 올라간다 하더라도 1억5천만원이다.

총 이자가 5%라면 1년 이자만 7억 5천만 원이 된다.

물론 시진핑을 비롯한 공산당 간부야 견딜수 있겠지만 다른 홍콩의 서민들은 견딜수 있을까?

그럴리가 없다.

무수한 신용불량자를 양산할 것이고 그들은 사회 불만세력이 되고 은행의 부실화를 가져온다.

그러면서 IMF가 세계에 자산버블이 심하니 은행은 부채비율을 일정수준으로 조정하자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중국의 은행들은 파산을 하고 말 것이다.

그러면 홍콩뿐 아니라 중국내부의 은행도 파산하며 파산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은행의 파산과 더불어 수출대금, 결제대금 등 국제무역거래가 정지 될수도 있다.

그렇다면 최악의 상황으로 가는 것이다.

이 때 중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현재는 무역전쟁중이므로 중국의 위안화 절하를 통해 미국이 매긴 관세를 무력화 시키려 할 것이다.

위안화를 25% 절하 했다면 관세 25%를 상쇄 시켜 버린다.

그것도 전품목에 모두 통용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중국의 전략은 미국과 한 판 붙자는 얘기가 된다.

그러면 미국은 더 빠른 더 높은 기준금리 인상과 더불어 재정정책을 더 강력하게 밀어 부칠 수 있다.

그러면 중국으로부터 외국인 달러 자금이 유출될 수 있다.

그래도 중국은 금융위기에 빠진다.

그렇다면 중국은 결국 금융시장을 개방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무한의 달러 유동성으로 중국이 금융시장을 개방할 때까지 밀어 부칠 수 있다.

그러면 더 많은 달러가 미국으로 더 들어가면서 세계는 불황인데 미국만 호황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미국의 주식은 이때 엄청난 폭등이 가능하다.

다른 나라들은 폭락하고 국가부도 일으키고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그런데 중국이 이러한 위기에 빠지기 전에 현명하게 위안화 절상이 되면 어떻게 되는가?

중국의 수출품이 적어지고 무역흑자 규모가 적어질 것이다.

그러나 세계경제는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금융시장 개방 시까지 계속해서 밀어부칠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금융시장을 개방 할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

왜냐하면 중국은 미국에 수출하지 않으면 망하기 때문이다.

당장 에너지와 식량난에 다다를 것이다.

경제는 나빠지고 중국 인민은 공산당 독재를 경기가 좋아지는 것으로 참았는데 경기가 안 좋아지면 인민의 마음은 돌아가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중국이 금융시장을 개방하면 어떻게 될까?

중국 본토로 엄청난 자금이 들어갈 것이다.

그것은 부동산, 주식 등의 버블을 더 키울 것이다.

그러나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 버블이 커지는 동안 미국경기는 블랙먼데이와 같은 증시 급락이 올 것이다.

미국은 누구와 싸울 때 미국의 증시가 좋다.

전쟁을 할 때는 특히 더 올라간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 증시는 과도한 부양으로 올라간 후유증의 여파로 추락할 수 있다.

그것이 블랙먼데이와 같은 증시폭락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시나리오를 짜고 행동을 해야 가장 돈을 많이 벌까?



결론이다.

현재는 미국에 들어가는 것이 맞다.

왜냐하면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계속해서 경기부양 신호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미국 들어오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중국이 위안화 절상에 이어 금융시장의 개방은 중국으로 들어가는 신호탄이다.

이때는 미국에 들어갔던 것 전부 빼서 중국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전까지는 무조건 미국에 있어야 한다.

그러다가 미국은 오버슈팅으로 인해 1, 2년 안에 미국의 금융시장 폭락을 할 것이다.

그러면 지켜보고 있다가 미국 경기가 좋아지는 신호가 보이면 중국것을 전부 팔고 미국주식을 사면 된다.

왜냐하면 바닥에 샀고 조금 있으면 중국의 부동산, 주식의 자산버블이 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후로 중국기업들이 폭락하고 새로운 G2가 나올때가지는 미국의 자산에 투자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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